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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벗이 건네준 달력이 제 방에 결려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달력입니다. 아주 간략한 드로잉들이지요. 그 그림 가운데 얼굴 모양의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아래에 '바보 김수환'이라고 써 놓은 게 있습니다.
우리 시대 가장 존경받고, 지혜로운 분으로 꼽히는 김 추기경께서 자신의 모습을 그려 놓고 '바보'라고 한 것입니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뛰고, 죽도록 일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귄위가 중시되는 가톨릭 지도가가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로서가 아니라 '바보'로 자신을 그린 것에서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청량감을 맛 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보라는 말 속엔 우리의 상식적인 개념을 무너뜨리는 통쾌함이 있습니다. 한자에서 우리가 보통 어리석을 '우'(愚)로 알고 있는 이 글자엔 '지혜로도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란 뜻이 있습니다. 고우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의 법명에도 이런 '우'자가 들어있지요. 어쩌면 바보는 명예와 재물 등을 손에 쥐는 이기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세상적 지혜에 대한 통쾌한 반란인 듯도 합니다.

우물 속에 개구리는 우물 밖의 개구리를 비웃습니다. 우물 밖 개구리가 전하는 더 넓은 세상을 본 적도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물 밖 개구리를 바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현자와 바보를 구분하는 것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도덕, 자신의 가치, 자신의 계율, 자신의 교리, 자신의 이념을 기준으로 판단하니까요. 그래서 그 울타리 안에서 잘 처신하면 현자라고 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바보라고 하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세상적인 지혜로 보면 어쩌면 원조 바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예수님이었던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손에 쥐고 쌓고 이겨서 쟁취하고 누리는 자야말로 승리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모든 재물과 여자는 물론 나라와 왕위까지 버리고 출가사문(비구 걸인)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세상은 발 뻗을 자리를 봐가면서 뻗으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철옹성 같은 기존의 종교체제와 제국의 아성에 맞섰다가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부처님과 예수님을 존경은 하고, 부처와 신으로 숭배는 하지만 그런 삶을 살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런 '바보'같은 삶 말이지요.

-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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